마음이 마음같지가 않고, 삶이 삶같지가 않다. 인생이 뜻때로 되지 않아 고통과 좌절을 거쳐 무기력에 다달았을때 이 책을 만났다. 다 읽고 나서도 나의 삶은 여전히 고통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원래 그렇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세상에서 가장 긴 소설책도, 가장 긴 영화도 마음만 먹으면 3줄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그 3줄을 읽었다고 해서 우리는 그 책을, 영화를 보았다고 하면 안된다. 영화와 책은 아주 섬세한 설득이자 공감의 과정이다. 반지를 훔쳐서, 산을 올라서, 반지를 던졌다. 라고 해서 그게 '반지의 제왕' 의 전부가 아닌것 처럼 말이다. 저자와 독자는 아주 긴 호흡으로 대화한다. 그게 비록 뻔한 이야기일지라도, 그 호흡 안에서 이뤄지는 설득과 공감은 독자에게 울림을 준다.
이 책에서 하는 이야기도 어쩌면 누구에게나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내가 생각했었던 이야기도, 처음 마주하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이 책을 주변에게 권하고 싶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될 수도 있을테니까 말이다.
나는 내가 어렸을 때 꽤나 특별한 아이 인줄 알았다. 그게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말이다. 특출나게 똑똑했던 건 좋은 쪽, 집에 빨간 딱지가 붙었던 건 안좋은 쪽, 등등. 또 내가 조금 더 컸을 때는, 내가 꿈 꾸는 것은 뭐든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치 미디어가 이야기 하듯, 나의 세상에선, 내가 주인공이어야하니까. 하지만 더 나이가 먹고 나서는, 나는 더이상 특별하지도, 주인공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쯤 부터는, 물질적인 부분에 대한 갈망이 그 부분을 채웠다. 사업을 접고 대학원에 온 이유는 안정적이고 좋은 직장을 가져 중산층의 삶을 누리고 싶다는 자산없는 20대의 발악이었다.
내 삶은 성공보다 실패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리곤 나의 지난 실패들은 마치 빚처럼 쌓여 밤마다 나를 괴롭혔다. 잠들기 전 몸에 체력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때, 나의 뇌는 내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지난 실패들을 모두 끌어와 나를 뜬눈으로 지새게 했다. 또 그런 실패들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떠올리게 하였다. 멀리서는 무대에서 반짝이는 아이돌들이나, 가깝게는 명문대 약대를 나와 나보다 한참 어린 나이에 나의 곱절을 벌며, 부모님에게 궁궐 같은 집을 물려받아 행복하게 사는 우리 어머니의 지인들의 삶을 볼때마다 나의 삶은 얼마나 뒤쳐졌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그러곤 상상하게 된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정말 행복할텐데.
저자는 인생이 고통이라고 말한다. 예외없이 말이다. 그 고통을 피할 것이 아니라, '어떤 고통을 맞이 할 것인가' 또 '어떤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것인가' 를 질문한다.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은, 그만큼 입시 과정에서 상응하는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아이돌들이 무대 뒤에서 얼마나 땀과 피를 흘리는 지 알만한 이는 모두 알것이다. 나는 끊임 없이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만을 상상했다. 나도 그 곳에 있으면 그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 곳에 가려면 그 댓가를 치뤄야 한다. 정상은 찰나이다. 등산은 과정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결국 등산을 하고자 할때, 산을 고르는 원칙은 어떤 정상을 가고 싶냐가 아니라, 내가 어떤 등산길을 오르고 싶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은 실패와 고통의 연속이다. 고통받지 않고 도달할 수 있는 곳은 산의 정상이 아니다. 또 정상에 도달한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끝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다음 산을 선택해야만 한다. 이번 산은 쉬웠더라도, 다음 산은 아닐것이고, 그 다음 산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코스, 내가 즐길 수 있는 코스를 가지고 있는 산을 선택해야 우리는 그 등정을 마무리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상의 풍경은 그다지 중요한 선택의 요인이 아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등산에서 정상은 찰나이고, 정상까지 오르는 과정이 사실상 전부이기 때문에.
그럼 삶이 끝없는 고통이라면, 나는 왜 살아야만 하는가. 이것이 내가 초등학생때 삶을 포기할까 고민할때 부터 지금까지 내가 고민하던 주제이다. 나는 이걸 작고 예쁜 빨간 버튼이라 부르는데, 하루가 행복하고 편안하면 이 버튼은 작아지지만 (그렇다고 사라지진 않는다), 삶이 힘들수록 이 버튼이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근시안적 관점과 원시안적 관점에서 두가지를 제시한다. 근시안적 관점에서는 우리가 등산의 과정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삶은 보통 불행하지만 때때로 행복하다. 그리고 그 때때로 행복한 순간들이 더 많이 찾아오는 사람들은, 운이 좋거나 돈이 많은 사람들이라기 보다는, 행복의 조건을 스스로가 통제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가치관이 자신의 통제하에 있을 때, 우리는 그 가끔 찾아오는 행복의 빈도를 더 높이고, 감정을 비교적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작고 예쁜 빨간 버튼이 나의 시야를 전부 가려, 내가 누를 수 있는 선택지가 그것밖에 보이지 않게 되는 그 순간을 막을 수 있게 된다.
원시안적 관점에서는 우리가 거대한 목표 중 일부라는 사실이다. 별로 안 와닿을 수 있겠지만, 거시적으로 나의 삶이 인류에 긍정적인 방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생존에 대한 큰 보답으로 다가온다. 작년의 겨울, 여의도에서 응원봉을 흔들며 짝꿍과 함께 대한민국이라는 배의 침몰을 막았다. 사회는 거대한 유기체이다. 세포 하나하나가 모여 책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인간이 되듯, 인간 개인이 모여 작게는 대한민국, 크게는 인류라는 거대한 배를 구성해 나아간다. 누군가에겐 부담이고 누군가에겐 자부심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벗어날 수는 없다.
책을 읽지 않고 이 글을 보면, 조금 뻔하고 와닿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서두에 말했듯, 책은 길고 섬세한 설득의 과정을 통한 공감이다. 나는 이 책이 정말정말 와닿았지만, 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쓴 이 글만 보았다면 별로 와닿았지 않았을 것이다. 삶에 의미를 찾는 누구라도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길 권한다.
[시간을 선택하는 기술 블럭식스] 나의 하루를 운전하는 방법 (4) | 2024.1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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