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겨울은 낭만과 현실이 공존한다. 눈이 하얗게 쌓인 차 안에는 어제 남기고 간 커피가 꽁꽁 얼어있었다. 오늘은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서울까지 먼 길이 남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식사이다. 맛있는 음식이 빠진 여행은 소리가 꺼진 영화와도 같다. 홍천에는 눈에 띄는 맛집이 없어 가는 길에 춘천에서 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중식당을 가서 고민을 한다면 약간은 어른이 되었다는 뜻이다. 어렸을 때 중식의 ‘요리’는 이따금 먹은 탕수육을 제외하고 한번도 처다본적 없는 미지의 영역이였다. 내가 탕수육을 제외하고 처음 ‘요리’를 먹은 건 대학교에 입학 후 교수님이 눈에 띄는 학생들을 불러내 식사를 사주시는 자리였다. 조교님께서 중식당을 안내해 주시길래, ‘아 교수님이 사주시는 식사도 별거 없네’ 라는 생각을 하며 식당을 들어갔지만 그 생각은 오래 가지 않았다. 식탁 위에는 생전 처음 보는 음식들이 얕은 김을 내고 있었다. 깐쇼새우의 깐쇼는 무엇인지, 유린기는 도대체 뭘 유린하는 것인지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에게 중식당의 메뉴판은 두배로 넓어졌다.
그런 차원에서 중식당을 함께 갈 수 있는 여러명의 친구가 있는 사람은 좋은 교우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친구가 없는 사람이라, 중식당을 함께 가주는 사람이 짝꿍밖에 없다. 하지만 여러 요리를 맛보기에는 둘은 턱없이 적은 인원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입이 짧은 둘이라면 더욱 그렇다.
코스요리는 그런 우리에게 작은 축복이다. 조금씩의 요리를 여러개 맛 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댓가로 우리는 선택권을 잃는다. 그런 의미에서 중식당은 항상 큰 딜레마를 남긴다. 먹고 싶은 요리 한개를 시켜 나눠먹을 것인가, 코스를 시켜 여러개의 요리를 맛 볼것인가.
중식당 려는 산 중턱에 위치해 빼어난 전망을 가진다. 요리 3개와 식사 하나, 후식 으로 구성된 점심 코스가 2만 5천원으로 비교적 실용적인 가격이다. 요리는 계절에 따라 변경되는 것같다. 이날은 팔보채, 가리비요리, 탕수육이 나왔다. 식사는 각각 짬뽕과 짜장을 시켰다.
요리는 전부 훌륭했다. 어쩌면 내가 탕수육을 제외한 다른 요리들을 많이 먹어본 경험이 없어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추운 날씨에 첫 요리로 팔보채가 나온 건 참 좋은 경험이었다.
식사 또한 모두 맛있었다. 개인적으로 짬뽕을 추천한다. 요즘처럼 근본없는 중식당이 많을 때, 정말 제대로 끓여낸 짬뽕은 참 귀하다.
서울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터널을 몇개 지나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마치 새하얀 꿈을 꾸고 온 것 처럼, 아무 일 없는 듯 서울로 돌아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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