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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2] 유럽의 여름은

[돼지로그] 먹고 또 먹고

by Life WHE 2024. 11. 12.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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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내가 가장 좋아하던 계절은 겨울이였다. 수족냉증이 너무 심해 손이 몇분만에 빨갛게 달아올라도, 눈이 올때면 매번 손끝으로 겨울을 담아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 그에 반해 여름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계절이였다. 그 시대의 집이 늘 그랬듯, 우리 집도 에어컨에 인색한 평범한 집이였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에어컨이 달려만 있었다싶이 했었다. 자다가 더워서 눈이 떠지면 얼마나 찝찝한지,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그러던 내가 여름이 좋아지기 시작한건 자취를 시작하고, 차를 사고 난 뒤 였다. 작열하는 태양과 이글거리는 풍경도 시원한 집과 차 안에선 제법 낭만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방에서 나오고 차에서 내려 몸에 소중한 냉기가 가시고 습한 공기가 나를 적시면 다시금 여름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 찌는 듯한 여름에 우리들이 힘들어하면, 신혼 여행을 로마로 다녀온 젊고 뻗대는 국어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유럽의 여름은 습하지 않아 낭만이 있다고. 한국에서의 여름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고. 우리로선 쉬이 떠올리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작년의 여름에 프라하를, 올해의 여름엔 파리를 다녀왔다. 신기하게 그곳의 태양은 우리의 그것과 똑같이 붉게 빛나지만, 들숨의 무게는 한결 가벼웠다. '아, 이래서 유럽의 여름은 낭만이 있구나' 라는 생각이 떠오를 수 밖에 없었다. 

 

노상에서 아페롤 한잔하면 얼마나 맛있게요.

 

한여름, 한국에서의 태양은 피하고 싶은 존재이지만, 그곳에서의 태양은 활기찬 에너지와도 같았다. 조그만 베낭을 매고 열심히 돌아다니다, 조금 더워지면 지척의 비스트로에 가서 아페롤 스프리츠를 시켰다. 

 

아페롤은 유럽의 태양을 닮았다. 붉게 빛나지만 무겁지 않다. 콜라처럼 기분 나쁜 달큰함이 입에 남지도 않고, 레드와인처럼 텁텁하지도 않을뿐더러, 화이트와인처럼 섬세하게 마실필요도 없다. 도수도 적당해 과하게 취할 걱정도 덜하다. 

 

올해의 파리에선 이틀에 한번 꼴로 아페롤을 마신 기억이 있다. 나에게 아페롤은, 유럽의 여름을 담은 기억의 한 조각이다. 

 

비록 이제 겨울이 다가오지만, 데일리샷을 통해 아페롤을 구매할 수 있었다. 비록 스파클링 와인을 넣지는 않았지만, 탄산수와 섞어 가볍게 마시니 작은 내 방도 잠깐이나마 파리의 스튜디오가 된 것만 같다. 

 

잠시나마, 이곳이 파리의 여름이 되었다.

아페롤 토닉

- 준비물: 

아페롤, 탄산수

- 레시피:

1. 하이볼 글라스에 얼음을 넣고 탄산수를 3/4 가량 따른다

2. 아페롤을 끝까지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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