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흉흉했다. 지금은 잘 끝나서 참으로 다행이지만, 정말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는 12월 초순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희망을 보았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비로소 빛의 의미를 깨닳을 수 있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
단 한글자도 덜어 낼 단어가 없는 이 문장이 어떤 의미인지, 지지난주 토요일과 그제 마음속으로 깊이 깨닫고 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은 먹어야 한다. 적어도 나는 미식을 위해 사니까. 이번주는 마음이 헛헛해 따뜻한 국물 요리가 많이 땡겼다. 얼만큼 먹었는지, 지난주 돼지로그를 함께 보자.
오늘의 공복 체중: 168/54.5
여의도는 참으로 추웠다. 답도 없는 소식을 듣고 와서 더욱 몸이 시렸다. 투표해달라고 애걸복걸하던 인간들이 투표를 안할 줄이야.
화날때는 뜨거운 국물로 풀어야한다. 짝궁은 현미밥과 갈비탕, 나는 틈새라면으로 끓인 빨개떡. 양심이 조금 찔리니까 샐러드를 얹어본다.
오이 반찬은 내 특기다. 일본식으로 맵지 않게 무치면 어느 밥이나 절친한 교우가 된다.
팟타이가 먹고 싶었다. 나는 피의 25% 가 동남아에서 와서 동남아 음식을 주기적으로 먹어야한다. (아님). 또 피의 25%는 사천지방에서 와서 마라탕도 주기적으로 먹어줘야 탈이 없다. (이것도 아님). 일요일이라 이국적인 맛으로 한번 밥상을 차려봤다.
호밀 바게트가 눈에 들어와 사봤다. 양송이와 마늘을 팍팍 썰어넣은 K-감바스와 에어프라이어로 돌린 치킨이다. 요즘은 에어프라이어용 냉동 음식들이 너무 잘 나온다. 하지만 자주는 먹지 않으려고 한다.
짝꿍이 약속이 있었다. 굶었다. 어렸을 때는 내가 집에 안들어오면 어머니가 밥을 제대로 안 차려먹는게 너무나도 싫었는데, 내가 살림을 해보니까 십분 이해가 간다. 둘이 먹나 혼자 먹나 요리에 필요한 힘은 똑같다. 짝꿍이 없는데, 밥을 차리기가 너무나도 귀찮단 말이지.
꼭 소스가 흘러 넘칠 필요는 없다. 나는 루를 쓰지 않고 크림소스를 만들어서, 오래 졸일 수록 고소하고 깊은 맛이 올라온다. 보기엔 볶음 같지만 맛있는 뇨끼. (사진은 내가 안찍었다. )
갈비는 참 맛있는 부위이다. 나는 왜 이 부위를 뼈랑 같이 썰어서 LA 스타일로 먹는 지 전혀 알수가 없다. 어짜피 뼈를 먹을것도 아니잖아. 소갈비살은 원육으로 사면 저렴한 축에 속하는 부위이기도 하다. 100g 에 3500원 정도만 투자하면 냉장 소갈비살을 살 수 있다. 얇게 썰어 센 불로 구워낸 갈비살과 마늘 구이. 꼬시래기 무침과 오이무침은 모두 주인장 작품. 김치는 김장김치. 나머지는 짝꿍의 집에서 온 반찬.
장을 보다가 오뚜기에서 츠케멘이 나왔길래 (사)밥보다면을사랑하는사람들모임 명예회원으로써 한번 집어봤다. 나의 평가는 다음과 같다.
당신은 지금 프라하 한복판에 있습니다. 한식이 먹고 싶어 근처 한식당을 찾아가서 비빔국수를 주문했습니다. 주인장이 '비빔국수 하나~' 를 외치며 홀연히 사라진 뒤, 10분 뒤에 당신의 앞에 나타난 것은 다름아닌 토마토 파스타.
뭐 토마토 파스타도 비빔국수는 맞다. 비벼서 먹는 국수니까. 이것도 마찬가지다. 츠케멘은 국물에 찍어먹는 면이란 뜻이다. 근데 이건 츠케멘이 아니다. 오뚜기여서 각오는 했지만 K패치가 너무나도 심하게 들어갔다. 오리지널 츠케멘은 아주 깊은 돼지육수가 킥인데, 이건 돼지가 살짝 발만 담근 맛이다. 간 소고기와 파는 주인장의 추가다. 원래는 국물만 있다. 다시 먹진 않을듯.
이건 저녁은 아니지만, 어제의 분노가 가시질 않아 안국에 츠케멘을 먹으러 다녀왔다. 썩 맛있진 않았지만 오뚜기보다는 훨씬 나은 맛이다.
여의도는 지난주보다 조금 더 따뜻했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주었다. 그리고 이번 여의도가 마지막이라는 사실에 참으로 안도했다.
저녁은 기분좋게 시켜먹은 치킨으로 마무리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루하루 행복을 쌓는 것도 중요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목숨이 다하는 그날, 지갑이 얼마나 묵직한가 가 아니라, 일생 중 얼마나 많은 하루들을 행복하게 살았는가가 우리의 인생에 대한 성적표일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주는 행복한 하루였다. 국민중 한명으로써 목소리를 낼 수 있음에, 나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짝궁을 만나고 있음에 감사하는 삶이었다.
-W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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