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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돼지로그] 12월 넷째주 - 2024년의 마지막 돼지로그

[돼지로그] 먹고 또 먹고

by Life WHE 2024. 12. 29.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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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시간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한다고 느꼈다. 2024란 숫자가 겨우 익숙해질때쯤 어검없이 새해는 찾아온다. 올해에 대한 회고는 다른 글로 풀어보고자 한다. 요즈음은 정신없이 살고 있다. 조금은 나태해진 것 같다. 밥도 더 많이 먹는다. 몸무게를 잰지는 이틀쯔음 된것 같다. 
 
이틀전 공복 체중 : 168/54.8
 
-12/23 (월)
마파두부, 항정살과 버섯구이. 

 
어쩌다 보니 단백질이 가득한 식단이었다. 항정살은 식감이 독특해 별다른 양념없이 가볍게 구워먹어도 맛있다. 부족한 자극은 마파두부가 장식한다. 짝꿍의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마파두부는, 심심하고 건강한 맛으로 우리집에 도착했지만, 내 손을 거쳐 매콤하고 자극적인 폭죽으로 변한다. 음식을 처음부터 새로 만드는 것도 즐겁지만, 누군가의 뛰어난 요리를 내 입맛에 맞게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다. 
 
-12/24 (화)
방어회와 레드와인
 

 
형편이 여유롭지 않지만, 그럼에도 짝꿍에게 꼭 먹이고 싶었던 것은 겨울의 방어이다. 홍대의 바다회사랑은 맛있는 방어회와 더불어 무지막지한 대기줄로 잘 알려져있다. 2년 전쯤 지인의 소개로 이 곳의 방어를 처음 먹어본 이후, 이 달콤하고 기름진 맛을 지금의 짝꿍에게 꼭 알려주고자 이곳의 방어를 올해 크리스마스 만찬으로 선택했다. 포장을 예약하기 위한 대기줄만 한시간. 내가 과메기가 된듯, 찬바람을 한시간쯤 맞아 대기를 한 뒤 가게에서 결제를 마치고, 또 한시간쯤 뒤에 다시 방문을 하여 음식을 픽업하면 그때가 되서야 비로소 이곳의 방어를 품에 안을 수 있다. 평소에는 부족한 듯 먹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일년에 한번만 먹는 이곳의 방어를 앞에 두고 무리해서 입이 둘임에도 불구하고 중짜를 주문하였다. 먹고 보니 대단한 패착이었지만 후회는 없다. 덕분에 기름지고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맞이 하였으니까. 
 
-12/25 (수)
(점심) 자장면과 짬뽕
 

 
전날 과음을 하진 않았지만, 요즈음은 나이가 들었는지 조금의 술만 먹어도 숙취가 오는 듯 하다. 집에 있기는 아쉽고, 밖은 추우니 더현대를 가기로 나섰지만 막상 도착하니 대로변부터 생기는 정체로 고민이 들때 텅 빈 IFC 주차장을 보고는 그곳으로 차를 틀었다. 더현대는 연인이 많다면, IFC 몰은 신혼부부와 가족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소비층을 타겟하듯 운이 좋게 IFC 몰에서 서성이던 중 크리스마스 퍼레이드를 봤다. 보자마자, 크리스마스의 설레임보다 휴일에도 일을 하는 그들의 표정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 나도 나이가 조금 먹은 모양이다. 
 
숙취로 국물이 당겨 가게들을 스캔하지만 2시가 가까운 시간임에도 많은 가게들에 대기줄이 있었다. 운이 좋게 아워홈에서 운영하는 중식당에는 자리가 있어 재빨리 앉아 주문을 하였다. 내가 느끼기에 자장면과 짬뽕은 요즈음 들수록 잘하는 가게가 점점 줄어드는 기분이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동네 아무 중식당을 가도 중간 이상하는 음식이 나왔다면, 요즈음은 리뷰를 보고 고르고 골라도 레토르트를 쓰는 가게가 많아졌다. 다행히도 이 가게는 매우 괜찮은 맛을 보여줬다. 여의도에서 살아남으려면 이정도는 필수겠지. 여의도나 강남 같이 좋은 곳에서 일한다는 점은 이렇게 작은 장점들도 같이 달려오나보다. 나도 맛있는 식당이 많은 곳에 자리를 잡아 일하고 싶다. 
 
-12/26 (목)
삼계탕
 

 
짝꿍은 결국 나에게 감기를 옮았다. 아마 받아본 크리스마스 선물 중 가장 최악 중 하나일 것이다. 집에 다행히도 냉동 삼계탕이 있어, 얼른 뎁혀 차려보았다. 매콤한 마파두부도 덤이다. 요즈음은 냉동음식이 잘 나온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포장을 벗겨보니 생닭 한마리가 통으로 들어있을 줄은 몰랐다. 
 
유년시절, 일년에 한번쯤 어머니는 가족을 데리곤 집 근처의 유명한 누룩지백숙집을 찾아갔다. 대기가 1시간 가까이 있는 유명한 맛집이었다. 
 
나는 삼계탕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에 빠트려 고기를 삶는 방식은 그 고기의 맛을 즐기기에 최선의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을 한다. 팬으로 굽거나, 기름에 튀기거나, 오븐에서 익히면 더 맛있는 닭을 굳이 물에 빠트려 먹어야 하는 이유를 나는 아직도 잘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머니와 함께 백숙집을 갔을 때면, 오랜 시간 함께 기다린 어머니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아까워 열심히 먹곤 하였다. 
 
나는 항상 어머니가 백숙집을 가자고 하실때마다 함께하였다. 하지만 막상 오랜 대기를 끝내고 식탁에 앉으면 어머니는 국물과 고기 조금을 드시고는 이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때의 나는 어머니가 백숙을 좋아하지만, 입이 짧아 많이 드시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조금 더 나이를 먹고 어머니께 사실 나는 백숙과 삼계탕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을때, 어머니도 사실은 당신께서도 삼계탕을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그 뒤로, 우리는 백숙집을 방문하지 않는다.
 
한참 뒤, 요즈음에는 그 식당의 국물 맛이 가끔 떠오른다. 어쩌면 크리스마스 다음날 먹었던 저 냉동 삼계탕의 국물을 먹어서 일지도 모른다. 나는 삼계탕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계탕을 한번 끓여내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일지라도 맛있게 먹어주는 짝꿍의 모습을 보니 이내 마음까지 든든해지는 기분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녀도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12/27 (금)
마파두부 (진짜 마지막)
 

 
올해의 마지막 금요일이었다. 하지만 일은 우리를 봐주지 않기에 6시 퇴근무렵이 다 되었을 때까지 3시간이 넘는 회의에 기운이 빨린 시점이기도 하였다. 우리 몸은 기운이 없을때 자연스레 맵고 짜고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된다. 가끔씩은 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조금 남은 마파두부를 한번 더 매콤하게 끓이고, 마지막으로 조금 남은 오이는 굳이 덜지 않고 통에서 바로 먹었다. 약소하지만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모자람 없는 식사였다.

-12/28 (토)
소금막창구이와 야채곱창


황학동에 살면서 누릴 수 있는 큰 장점 중 하나는 저렴한 맛집이 근처에 많다는 점이다. 이 곳, 빠삐용 곱창은 내가 알고 있는 곱창집중 감히 1등이라고 꼽을 수 있는 몇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메뉴를 1인분씩 주문이 가능하다는 점이나, 다양한 쌈류가 제공된다는 점. 더군다나 이곳의 소금구이는 정말 일품이다. 왠만한 소고기 만큼 맛있다고 느껴진다. 야채곱창은 이날 처음 시켜보았는데, 이것도 정말 맛있었다. 이날은 광화문에 잠시 데이트를 하러 나왔다가 자연스럽게 집회까지 참여를 하고 온 하루였다. 진보와 보수 단체 모두 추운 광화문 광장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모습은 가히 근현대사의 한복판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올해의 연말은 유독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오늘 오전, 항공사고로 많은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죽음은 참으로 잔인하다. 돌아가신 분들도, 그것을 황망히 지켜보는 남아있는 자들에게도 너무나도 안타까운 사고이다. 돌아가신 모든 분들에게 명복을 빈다. 새해에는, 조금 더 행복한 소식이 많이 들리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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