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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돼지로그] 1월 첫째주 - 24년의 디저트이자 25년의 에피타이저

[돼지로그] 먹고 또 먹고

by Life WHE 2025. 1. 5.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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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요리의 평가에서 큰 영향을 미치는 메뉴는, 메인도 에피타이저도 아닌 디져트다. 디저트가 맛있는 코스요리는, 비록 메인이 조금 부족했더라도 맛있었던 식사로 착각된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나의 홀리데이 시즌은 크리스마스에 시작해서 신정을 지나, 나의 생일에 막을 내린다. 지난 2주간 부침은 있었지만 잘 견뎌내었고, 이번 주말은 더없이 행복한 이틀이었다. 24년의 디저트로 25년의 생일을 포함해 본다면, 나의 24년은 어제와 오늘로 인해 행복한 시간으로 착각될 수 있을 것만 같다. 
 
내 암흑같은 시간이 행복할 수 있었던 대부분의 이유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행복한 한해가 되길 바라며 25년을 맞이해본다. 
 
올해에는 더 맛있는 음식을, 더 행복하게, 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길바라며, 25년의 돼지로그를 시작한다. 
 
오늘의 공복체중: 168 / 54.3
 
- 12/29 (일)
간장게장과 굴
 
집에서 꽃게장 한마리와 굴 한봉지를 받아왔다. 해산물은 육류보다 훨씬 맛있지만, 항상 위험을 부담한다. 나에게 주어진 게장은 이미 유통기한을 이틀쯤 넘긴 친구였다. 운이 좋다면 푹 익어 달큰한 살맛을 보겠지만, 운이 없다면 월요일 내내 화장실에서 설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위험한 선택은 피하자는 주의의 사람이었다. 과거의 나에게 인생은 안전한 선택만 눌러도 충분히 위험천만한 낭떠러지였다. 어쩌면 유년시절의 휴우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삶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어쩌면 내가 낭떠러지에서 걷고 있는게 아니라, 이미 절벽에서 떨어지는 중인것 아닐까. 어짜피 토마토 수프마냥 으깨질꺼라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기보다 돌벽에 억척같이 피어난 들풀을 보고 파아란 하늘도 보고 함께 하늘을 나는 새도 보고 싶다. 
 
그래서 게장을 먹었다. 게는 달큰했다. 굴도 마찬가지였다. 

굴을 초장에만 찍어먹어보았다면, 타바스코와 레몬즙을 뿌려 먹어보자. 여유가 된다면 위스키 한두방울도.

 
-12/30 (월)
부채살 구이와 너구리, 샐러드
 
나는 소갈비살 예찬론자지만, 할인 앞에는 장사가 없다. 최근 이마트에서 호주산과 미국산 부채살을 100g에 2천원 대로 계속 할인중이라 한번 사보았다. 부채살은 비록 지방은 별로 없지만 근육이 질기지 않아 맛있는 부위인데, 가운데 힘줄은 조리방법에 따라 거슬릴 수 있다. 특히 등심처럼 겉만 색을 강하게 내고 지방만 익혀먹는 스타일로 굽게 되면 힘줄은 씹을 수 없을 정도로 질기게 남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부채는 중불로 천천히 팬프라잉을 하는게 제일 맛있는 것 같다. 심부온도를 57도 정도까지 올린 후, 2분 미만으로 레스팅해서 먹는다.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다면 알려달라. 
 
너구리는 굴이 남아서 한번 끓여보았다. 샐러드는 도시락이 남아 덜어보았다. 

 
-12/31 (화)
부채살 구이와 샐러드2
 
랩미팅때 또 혼이 났다. 그럴때 마다 등에서 식은땀이 나고, 손목의 애플워치는 고심박수 알림을 울리며 응급 신고가 필요한지 물어본다. 미팅이 끝나고 나오면 헛구역질이 난다. 괜찮은 척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것 중 하나다. 
 
원래는 평일에 술을 먹지 않는다. 하지만 다음날이 신정이니만큼 작은 사치를 부려 맥주한잔을 따랐다. 메뉴는 어제와 동일하게 소고기이다. 소를 먹으면, 내가 잘 살고 있는것 같은 착각이 든다. 비록 그 소가 100g에 5천원이 넘는 한돈을 내려놓고 가져온 2천원짜리 호주산 부채라 할지라도 말이다. 삶은 원래 착각과 최면의 연속이다. 잘 살고 있지 않아도, 잘 살고 있는 것처럼 최면을 걸어본다.
 
나는 라면을 좋아한다. 매콤하고 감칠맛 나는 국물은 내가 받지 못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고안해 만든 비법이다. 하지만 31일까지 라면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매일같이 해가 뜨고 지지만, 이날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부끄러운 나의 작은 열등감이다.
 

 
-1/1 (수)
점심: 장칼국수와 김밥, 저녁: 떡국과 닭갈비

 


 
강릉에 다녀왔다. 해돋이를 보기 위해 출발했지만 정체로 일출보다 30분쯤 늦게 도착했다. 어떻게 보면 실패한거고, 어떻게 보면 성공한거다. 연초부터 스스로를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바다는 항상 같은 모습으로 우릴 반겨줬다. 적당히 쓸쓸하고, 적당히 귀기울여주는 바다는 나의 가장 큰 요람이다. 오랜만에 보아 반가웠다. 
 

 
 
점심으론 장칼국수를 먹었다. 칼국수집의 주인공이 김치라면, 빠질수 없는 조연은 김치인데 이집의 김치는 너무너무 맵고 맛있었다. 정말이지 내입에 쏙 맞은 김치였다. 다음에 이곳을 간다면 칼국수가 아니라 김치를 먹으러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칼국수집 치고는 독특한 메뉴인 김밥도 판매하는데, 김밥과 김치의 조화도 아주 끝내준다. 칼국수는 떡볶이 느낌이 나는 달큰한 국물이었다. 난 원래 칼국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까치칼국수

 
강릉에서는 1시반쯤 출발했는데, 집에 도착하니 7시 반이 넘었었다. 정체는 지겹도록 이어졌지만 짝궁이 있어 하나도 지겹지 않았다. 가장 재밌는 여행지도 싫은 사람과 함께 떠나는 출장이라면 재미가 있을리가 없고, 그저그런 여행지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행복할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이다. 여행지보다는 동반자가 누군지가 훨씬 중요하다. 함께하는 사람이 누군지에 따라 무료한 시간들도 반짝일 수 있을테니까. 
 
저녁은 떡국을 끓였다. 원래는 굴떡국을 끓이기 위해 굴을 샀던것인데, 일요일과 월요일 사이에 모두 치워버려 그냥 떡국이 되었다. 간단하게 짝궁 부모님이 보내주신 사골국물에 떡국떡을 불려 넣었다. 지단을 부쳐보려고 했지만 아직 스킬이 부족해 모두 스크렘블드 에그가 되어버렸다. 파도 예쁘게 썰지 못해 투박하다. 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말이다. 
 

 
-1/2 (목)
연어 까르파쵸와 슈바인학센
 
목요일은 보통 장을 본다.  이마트에서 연어는 작년 가을까지 4천원대를 유지하다가 어느샌가 6천원을 넘어 12월까지 쭉 7천원이 넘는 가격을 보였다. 이날 가니 오랜만에 4천 9백원에 팔길래 한덩이를 담아왔다. 공복에서 장을 보면 판촉과 시식에 쉽게 정신이 팔린다. 이날은 슈바인학센이 나의 눈과 코를 자극했다. 할인을 하길래 담아보았다. 주부로써 실격이다. 
 
연어는 초밥으로 먹어도 좋고, 그냥 사시미로 썰어먹어도 좋지만 고부지메를 하지 않은 마트 연어는 살맛과 감칠맛이 떨어져 조미를 해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레몬즙과 단일품종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1:1로 섞고, 소금으로 간을 하면 훌륭한 까르파치오 소스가 된다. 산때문에 연어의 색이 바뀌는 것이 싫다면 아예 딥(dip) 소스 처럼 먹어도 좋다. 또 꼭 양파를 잘게 썰어 넣어야 한다. 연어의 심심한 맛은 소스가, 심심한 식감은 양파가 채워줘 충만한 음식이 된다.

 
 
-1/3 (금)
 
부채살 구이와 연어2
 
부채살이 두덩이가 남아 굽고, 연어는 전날과 동일하게 소스를 만들었지만, 붓지 않고 따로 준비했다. 양파는 길게 써는 것보다 잘게 써는것이 나은 것 같다. 
 

 
 
 
-1/4 (토)
양꼬치와 마파두부와 꿔바로우와 꽃빵

 
아주 재밌는 일이 있었다. 이 가게는 2주 전쯤 처음 방문한 곳인데, 4시 반쯤 찾아갔더니 아무도 없는 가게에서 우리 팀만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곤 이날 방문을 했는데, 글쎄 사장님이 어 며칠전 그분 아니시냐며 서비스를 듬뿍듬뿍 주시는 것이다. 우린 고작 꼬치 두개에 맥주 한병만 시켰을 뿐인데, 마파두부도 주시더니 꽃빵도 주시길래 참 기억력과 인심이 후한 분이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안그래도 요리를 하나 시키려던 참이었는데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사장님이 또 오시면서 이번엔 꿔바로우 두점을 내주시며, '어제 자리 양보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아, 이 호의가 나의 것이 아니였음을 깨달았다. 사장님께 다른 분과 헷갈리신것 같다고 하시니, 아 그럼 이제부터 단골 하시면 되죠, 라고 넉살좋게 말씀을 주셔서 불편한 마음이 덜 해졌다. 
 
나는 단골이 되는 것을 좋아한다. 누군가를 기억하고, 누군가의 기억에 남는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일인데, 매개체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라면 더할나위 없다. 보통은 자주 방문해서 단골이 되곤하는데, 이곳은 단골이 되어 자주 방문하게 되었다. 
 
친절한 사장님과 신선한 양고기가 있는 이곳은 박가네 양꼬치이다. 신당 근처에서 맛있는 양꼬치와 중국 요리가 필요하다면 꼭 고민해보길 바란다.

 

 

 
-1/5 (일)
꼴레뇨와 생일케이크

 
오늘은 나의 생일이라, 어머니와 함께하는 데이트를 보냈다. 나이를 먹고 독립을 한 후로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모두 노력의 산물이 되었다. 인상깊은 전시와 따뜻한 대화가 함께 한 생일이었다. 오늘 본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의 비엔나1900전인데, 이에 대한 내용은 별도의 포스팅으로 정리하겠다. 
 
프라하는 나에게 아주 소중한 기억을 담은 여행지 중 하나다. 일주일간 무려 3번이나 꼴레뇨를 먹었었는데, 한국에 와서는 그만큼 하는 집을 찾기가 어려워 아쉬워할때쯤 이곳을 알게 되었다. 가격대는 조금 나가지만 잘 구워진 꼴레뇨를 먹을 수 있는 가게이다. 그만큼 어머니께 꼭 소개를 하고 싶었다. 어머니 입맛이 아닌건 잘 알지만, 그래도 한번쯤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집에 오니, 짝꿍이 몰래 케익을 사왔다. 이 사람은 투박하다. 그런데 섬세하다. 진한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식없는 투명한 마음과 사랑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작은 감동이 지나고 나니 초를 꼽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준다. 그러고보니, 누군가가 나의 생일에 축하의 노래를 불러준게 언제가 마지막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니 꽤나 예전인것만 같다. 나는 비록 가난하지만 사치스럽고, 낭만스러운 사람이다. 케익 선물도 좋지만, 노래가 얹어지면 더 좋다. 그이에게 며칠전 꽃도 선물을 받았다. 어쩌면 나의 진짜 생일선물은 그이인것 같다.
 

 
 
 
모두 행복을 집요하게 추구했으면 좋겠다. 너도, 나도 곧 토마토 수프가 될 운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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